[김용승 기고] '4ᆞ19의 노래' 3종의 의미를 되새기며
제 56주기 4.ᆞ19 혁명 기념일을 맞으며
4.19 혁명의 의미
1960년 4월 19일을 전후하여 일어난 정치혁명.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제2공화국을 출범시키는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5·16군사쿠데타 이후 의거로 규정되었으나 혁명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며, 4월 19일에 절정을 이루었다 하여 <4·19혁명>이라
불리기도 한다.
4월혁명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이승만 1인독재와 자유당의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었다. 집권 이후 숱한 정치파동으로
영구집권을 획책 하던 자유당 정권은 58년 12월 보안법 파동을 일으켜 국민과 야당 그리고 언론의 비판을 봉쇄했다. 그러나 민심의
이반으로 60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관권을 총동원, 대규모 부정선거를 감행했다.
국민들은 3·15부정선거의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고 마산을 시발로 전국 각지에서 부정선거 규탄시위의 불길이 치솟았다.
결국 4월 27일 이승만의 하야성명과 함께 12년 독재정권은 종말을 고했다. 28일에는 이기붕 일가가 자살했음이 확인되었고,
29일 이승만은 몰래 하와이로 떠났다. <편집자 주>
올해도 어김없이 4ᆞ19는 돌아오고 민주영령을 위로하고 민주주의의 참뜻을 되새기는 행사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거행됐다.
4ᆞ19의 노래(1)
언제부터인가 4ᆞ19기념식장에선 4ᆞ19의 노래가 제창되고 있는데 수많은 4ᆞ19 노래의 원조격이라고 할까. 지금 불리워지고
있는 4ᆞ19의 노래는 당시 제2공화국 민주당 정부가 4ᆞ19 민주의거의 고귀한 정신을 계승한다는 취지 아래 의거직후인
1960년 6윌23일부터 7월11일까지 전국의 중ᆞ고ᆞ대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노래가사를 공모하여 당시 경남 마산여중 국어교사
로 재직중이던 강태욱(필명: 강욱)선생께서 총 636편의 응모작중 영예의 당선작으로 뽑혀 작곡가 김동진님의 곡을 붙여 만든 노래라
고 한다.
이 노래는 1961년과 1962년 두해동안 4ᆞ19기념식에 합창곡으로 라디오방송을 타고 전국으로 울려 퍼졌으나 1963년 3월부터
한일협정 반대시위가 전국을 휩쓸면서 많은 학생들이 이 노래를 데모가로 부르게 되자 정부의 압력을 받은 방송사가 방송을
금지시키고 말았으며 그후 이 노래는 한동안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는 웃지못할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4·19의 노래(1)
강 욱 작사
박동진 작곡
눈부신 젊은혼이 목숨을 바쳐
독재를 물리치고 나라건졌네
분노가 폭발되던 사월 십구일
우렁찬 아우성은 메아리 되어
민주대한 역사위에 길이 남으리
이루자 민주통일 그 정신으로
짙은 피 솟구치는 우람한 넋은
이 겨레 살길을 바로 잡았네
정의의 폭풍일던 사월 십구일
아릿다운 봉오리 외치던 소리
민주대한 역사위에 길이 남으리
이루자 민주통일 그 정신으로
4·19의 노래 (2)
4ᆞ19 혁명의 숭고한 정신을 노래로 남기려는 열기가 당시 전국적으로 뜨거웠나 보다. 4ᆞ19 의거 두달 뒤인 1960년 6월 19일
부산 문화방송에서도 시민공모를 통해서 4ᆞ19의 노래를 제정했으며(이동학 작사 , 최인찬 작곡) 이 노래는 두달 뒤인 마산의거
기념식장 에서 청중들의 흐느낌 속에 울려 퍼졌으나 역시 잊혀졌던 노래로 2000년 4월 19일 부산문화방송에서 수소문 끝에 40년
만에 노래악보를 찾아내어 화제가 된적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마산출신의 문학청년으로만 알려져 있던 작사자 이동학씨는 "불길보다 뜨거운것이 흘러 넘치던 4월 , 그날의 거리를 생각하면
가슴 속에 눈물보다 고운 노을이 흐른다 " 라는 당선소감을 남겼다.
또 청도출신으로 이호우 시인과 더불어 오누이 작가로 , 청마 유치환과의 플라토닉 러브로 화제가 되었던 정운 이영도 시인께서도
여류시인 특유의 감성으로 4ᆞ19를 회상하는 주옥같은 노랫말을 남겼다.
진 달 래
이영도 시 / 한태근 곡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 등 마다
그날 스러져 간 젊은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연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
4ᆞ19의 노래(3)
필자의 선친은 모교인 경북고를 비롯하여 대구여고, ᆞ능인고 등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하면서
민족문학의 대표적 장르인 시조시인이란 타이틀을 갖고 계셨던 조금은 특이한 이력을 가지
셨던 분으로 동서양을 넘나드는 분이었다.
50세란 짧은 생을 시조 동인지 "낙강"을 통하여 이영도.이우출 시인등과 교우하며 20편이 채 되지 않는 작품을
남겨서 변변한 시집하나 묶어 드리지 못한 것이 늘 죄송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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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신간서적코너에서 '매일신문 음악기사 색인집' 을 보다가 선친께서 작사하신
'4.ᆞ19의 노래' 가 1960년 5월 29일자 대구매일신문지면에 수록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ᆢ 차일피일 1년을 미루다 지난달 신문사 자료실을 찾았다.
원본은 세월이 오래되어 파쇄 되어 없고 CD로 저장된 걸 출력해보니 깨알 같은 글씨라ᆢ 1절 가사는 ᆢ어릴 때부터 약주 한잔 하고
들어오시는 날 이면 어김없이 흥얼거리시어 자장가 삼아 듣다보니 거의 암기상태로 낯설지 않았으나 2절ᆞ, 3절은 형광펜으로
칠하고 돋보기 들여다 대고 수사관이 되다시피 복원을 했다. 작곡은 당시 같은 학교 음악교사로 재직하셨던 백남영 선생님이 하셨다.
4·19의 노래(3)
김장수 작사
백남영 작곡
연보라 피어나던 젊은 꽂송이
나라와 겨레의 살길을 찾아
총칼을 무릅쓰고 정의를 위해
하늘높이 외치던 4월 19일
아ㅡ아 송이송이 떨어져간
거룩한 넋이여 님의 넋이여
진리의 깃발을 높이 들고서
빼앗긴 우리주권 다시 찾으려
끓는 피를 뿜으며 쓰러져 간
지축을 밟아흔든 4월 19일
아ㅡ아 백의강산 붉게 적신
거룩한 피여 님의 피여
새날은 밝아온다 동해 저 멀리
님들의 무덤위에 새싹은 돋네
겨레의 가슴마다 영원히 피는
그대를 잊을소냐 4월 19일
아ㅡ아 청사에 길이 빛날
거룩한 별이여 님의 별이여
필자도 이제 늙어가나 보다. 아니 늙었나 보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자꾸만 과거를 회상하게 되고 구닥다리 골동품을 자꾸자꾸
끌어안는다.
선친 이야기도 나오고 해서 쫌 쑥스럽기도 하지만, 4.19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겨보자는 의미에서 장황하게 글을 올렸다.
기고 / 김용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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