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개정안과 검찰개혁법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의결을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첫 주자로 나선 주호영 의원의 주가가 대폭 올랐다.
한국당이 지난달 29일 열릴 예정이었던 본회의 안건 중 민생법안을 제외한 모든 법안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하자고 제안했던 주 의원은 일찌감치 필리버스터 1번 주자로 낙점받았고 23일 여지없이 그의 진가를 드러냈다.
주 의원은 이날 오후 9시 49분께 검은색 양복 차림으로 단상 앞에 서서 의사 일정 변경을 염두에 둔 듯 "문 의장이 참 가지가지 한다"고 말한 뒤 "지금부터 토론을 시작하겠다"며 필리버스터를 시작했다. 그의 발언은 3시간 59분 동안 계속됐다.
판사출신인 주 의원의 필리버스터는 4선 중진 의원으로서의 경륜과 각종 법안 등 국회의 전반적 해박한 지식들이 가감없이 단상에 올려졌다.
주 의원의 사이다성 발언에 지역구인 대구 수성구는 물론, 전국적인 보수층의 심금도 울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선거법에 대해 “정의당이 어떻게 해서든 의석수 좀 늘려보려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천하에 없는 제도를 만들어오고 민주당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을 어떻게든 통과시키려고 두 개를 맞바꿔 먹었다”면서 “선거법은 지금까지 여야가 거의 합의해서 처리했는데 내년 선거에서 만약 한국당이 과반이 돼서 선거법을 바꾸면 여러분이 그대로 승복하겠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불법 사보임, 상임위 숙의 기간 미달 등 패스트트랙 법안의 불법성을 강조하면서 "70년 넘게 쌓아온 민주주의를 여러분이 일거에 다 무너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 의원은 이날 본회의 개의 직후 임시국회 회기 결정의 건과 관련해 필리버스터를 시도했으나 문희상 의장의 불허로 불발된 것을 언급하며 "본회의에서 표결되고 토론이 되는 모든 안건은 필리버스터 대상이 되게 되어있다. 이런 걸 자당 이익을 위해 그냥 무시해서 되겠나"라며 "(의장) 혼자 논리"라고 비판했다.
주 의원은 야유를 보내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향해서도 "제 말을 여기서 비웃는 민주당 의원들 계시는데 어떻게 되는지 지켜봅시다. 좀 겸손하세요", "한 10년 권력 놨다가 잡으니까 나라를 온통 전리품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등의 날 선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토론 시작 40여분이 지나면서는 잠시 눈을 감은 문 의장을 향해 한국당의 한 의원이 "의장님 졸지 마세요"라고 외치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주 의원이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과 관련해 발언을 하자 일부 민주당 의원이 고함을 치며 항의하는 모습도 나왔다. 일부 의원이 "들을게 있어야 듣지"라고 말하자 주 의원은 "들을 거 없으면 나가세요"라고 맞받아쳤다.
그는 패스트트랙 법안인 선거법, 공수처법뿐 아니라 예산안 날치기, 대북정책, 탈북자 송환 문제, 부동산 정책, 탈원전 정책, 교육 정책 등 다양한 사회 현안과 관련해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했다.
지역 정가 관계자는 "주호영 의원의 해박한 지식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난 자리였다. 주 의원과 함께 국회방송 생중계를 보며 몇시간을 보낸 시민들이 많았을 것"이라며 "이번 필리버스터 1호 주자를 맡으면서 그동안 쌓여온 주 의원에 대한 피로감이 단번에 없어졌고 지역민들의 자존감도 많이 높아지게 했다"고 분석했다.
주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 특임장관,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여의도연구소장,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바른정당 원내대표 등을 거치면서 쌓아온 경륜을 이날 한꺼번에 보여줬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