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나 지나 입주자 손해배상금 적어 소송 착수금 빼면 손실…시공사 ‘AS센터’ 철수땐 불편 가중입주민vs시공사 불신 확산국토부, 지난해 분쟁 조정 4244건…조정위 합의 못하고 상당수 소송전
2014년 입주한 서울 강서구 A아파트는 올해 초 시공사를 상대로 하자보수 소송을 냈다. 하자보수 소송 전문이라고 하는 변호사가 의무 보상 기간인 10년 동안 시공사로부터 하자보수를 받는 것보다 소송을 통해 돈으로 보상받는 게 유리하다고 하며 소송을 권유한 것이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입주민 70% 이상의 참여를 이끌어내 소송에 나섰지만 시간이 갈수록 부정적인 여론이 늘었다. 시공사 측이 소송에 참여한 세대에 대해 하자보수를 중단하면서 입주민의 불편이 가중된 데다 실제 승소해도 배상액이 그리 크지 않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는 소송 중단을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
■ 하자분쟁 확산…입주민·시공사 불신이 원인
최근 들어 아파트 하자보수를 둘러싸고 소송 등 시공사와 입주민 간 분쟁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하자보수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지만 이를 노리고 소송을 부추기는 변호사들이 기획 소송을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되는 상당수의 하자 소송이 ‘기획 소송’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21일 국토교통부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신청된 하자 관련 분쟁조정 건수는 4244건으로 2014년 1676건보다 2.5배나 늘었다. 이 위원회는 아파트 입주민과 시공사 간 하자 관련 분쟁이 일어났을 때 이를 조정하는 곳으로, 이곳에서 조정이 되지 않을 경우 소송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조정 불성립 건수 역시 매년 늘고 있어 하자 관련 소송 역시 증가세를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225개 건설사를 상대로 663건의 하자보수 이행 청구가 진행되고 있고 160건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처럼 하자보수 분쟁이 늘고 있는 것은 입주민과 시공사 간 시각차가 크기 때문이다. 입주민은 시공사가 하자 처리에 소극적이라고 인식하고 있고 시공사는 입주민들이 규정보다 과도한 것을 요구한다고 불만이다. �이런 틈새를 파고든 게 하자 소송 전문 변호사들이다. 이들은 입주민들에게 시공사로부터 실제 보수가 아닌 돈으로 보상을 받아 전문하자 보수업체에게 보수를 맡기는 게 유리하다는 논리로 입주민들에게 접근한다. 이를 위해 변호사들은 하자 조사를 담당하는 하자 적출업체와 소송 후 하자 보수를 담당할 업체까지 함께 팀을 이뤄 들어온다. 한 하자 소송 전문 변호사는 “아파트 입주민들이 전문가가 아닌 이상 숨겨져 있는 아파트 하자까지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라며 “하자 적출업체가 전문적으로 하자를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배상금을 산정해야 더 많은 배상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 하자 소송으로 손해볼 수도…
“배상금 사용처 제한 필요”하지만 지금까지 소송 실적을 보면 하자 소송은 입주민과 건설사에게는 불리하고 변호사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건산업이 추정한 자료를 보면 하자보수 소송을 통해 얻은 손해배상금은 가구당 50만원 안팎이다. 소송을 해도 법원에서 인정받는 배상 규모가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가운데 소송 착수금과 성공 보수금, 하자 적출업체 비용 등이 변호사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 서초구 양재동 B아파트의 경우 총 65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나 승소 판결금이 크지 않고 오히려 착수금과 법원 감정비용을 공제하고 나면 6000여만원 손실이 발생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하자보수 소송으로 하자보수가 중단돼 입주민들이 피해를 보는 것도 문제다. A아파트의 경우도 하자보수 소송을 제기하자 시공사에서 아파트 내에 있던 AS센터를 철수시키면서 입주민들의 불편이 가중됐다. 시공사 관계자는 “입주민들이 하자보수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은 실제 보수가 아닌 돈으로 보상을 받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회사 방침상 AS센터를 철수한 것”이라고 말했다.
두성규 건산연 연구위원은 “하자소송이 남발되는 것은 입주민들이 소송에 따른 배상금이 클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는 점과 배상금을 하자보수에만 써야 한다는 사용처 제한이 없기 때문”이라며 “배상금의 사용처 제한을 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고 법원도 배상금을 통한 보상보다는 실제적인 보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판결을 해야 기획 소송에 따른 폐해를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